posted by 이쿤 2011.01.12 20:22



  늦은 감이 있지만 황정은 작가님의 첫 장편집 <百의 그림자>를 들고 왔습니다. 황정은 작가님은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에서 자신의 문학적 세계관을 드러냈고 <백의 그림자>에서는 그 세계가 이전의 단편집에 한정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


百의 그림자 황정은 2010 민음사



百의 그림자 百의 소설


  앞에서 말했듯 황정은의 이전 단편집과 <백의 그림자>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전 소설집에서 통통튀는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현실의 알레고리를 보여주었다면 <백의 그림자>에서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언어의 낯섦, 등 뒤에서 늘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그림자의 존재. 수백 수만이 될 수 있는 자기 자신과 그림자의 이미지를 작가 자신만의 어법으로 적어내려간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정은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가 있다.

황정은 백의 그림자 작가 프로필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에서는 아버지가 모자로 변해버리는 황당한 알레고리를 구축하거나 언어가 엇갈리는 20대들이 풉풉풉풉 풀에 공기를 넣거나 합니다.

  백의 그림자에서 볼 수 있는 어두운 이미지, 가벼운듯하면서 작가의 의식을 잘 담고 있는 단문의 문체같은 파격적인 변화는 황정은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합니다.




언어의 대한 도전


  황정은은 백의 그림자에서 언어로써 언어의 불명징성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언어이기에 그 불명징성을 보여주기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가마가 말인데요, 내가말했다.
열 명을 세워 두고 자기에게 가마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고 물어보면 몇이나 손을 들까요.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한 명이나 두 명쯤은 손을 들지 않을지도 모르죠.
전부 손을 들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고요.
그럼 가마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자기 가마를 유심히 본 적 있는 사람, 하고 물어보면 몇 명이나 손을 들까요.
글쎄요.
무재 씨, 나는 가마는 그냥 가마라고 생각했지 거기에 모양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가마는 가마지만 도무지 가마는 아닌 가마인가요.
무슨 말이에요?
해보세요, 가마.
가마.
가마.
가마.
가마.
이상하네요.
가마.
가마, 라고 말할수록 이 가마가 그 가마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죠. 가마.
가마.
가마가 말이죠, 라고 무재 씨가 말했다.
전부 다르게 생겼대요. 언젠가 책에서 봤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생겼대요.
그렇대요?
그런데도 그걸 전부 가마, 라고 부르니까 편리하기는 해도, 가마의 처지로 보자면 상당한 폭력인 거죠.
가마의 처지요?
가마의 처지로 보자면요, 뭐야 저 ‘가마’라는 녀석은 애초에 나와는 닮은 구석도 없는데, 하고. 그러니까 자꾸 말할수록 들켜서 이상해지는 게 아닐까요.


황정은 백의 그림자 37p


  가마는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우리는 가마를 가마라고 부릅니다. 가마, 가마, 가마. 반복해서 이야기하다보면 가마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발음 그대로의 가마만이 남습니다. 이런 언어의 불명징성을 황정은은 소설 안에 과감히 넣습니다. 언어가 흐트러짐으로써 보편적인 이미지가 스러지고 백의 그림자에서 보여주려고했던 날것의 이미지만이 남아 도드러지는 것이 아닐까요.





죽음과 그림자의 이미지




컵을 닦고 있는데 정전이 되었다.

문득 불이 꺼졌다.

스륵, 하고 모터가 헛도는 소리를 내며 냉장고가 꺼졌다. 바깥에도 불이 꺼진 듯했다. 고요했다. 나는 손에 든 것을 일단 내려두자고 생각해서 선반이라고 짐작되는 위치에 컵을 내렸다. 가늠이 잘못되었는지 컵이 바닥으로 떨어져 엄청난 소리를 내며 깨졌다. 한동안 얼이 빠진 채로 서있었다. 바닥에 파편이 흩어져 있을 것이 분명했는데 거의 보이지 않아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가스 불이라도 켜 보자고 생각해서 켜 보았지만 그 불빛으로는 바닥을 확인할 수 없었다. 어딘가 양초가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도무지 양초 같은 것을 사 둔 기억이 없어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가스를 껐다. 손에 잡힌 천 조각으로 발 앞을 닦아 내며 조금씩 이동했다. 종아리가 욱신거렸다. 욱신욱신하는 것을 참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방으로 넘어가는 문턱에 당도해서 멈췄다. 문턱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더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파편이 박힌듯 발모서리가 따끔거리고 종아리도 심상치 않았다. 피가 흐르는 듯해서 손바닥을 대 보니 과연 피처럼 땀처럼 미끌미끌한 것이 번져 있었다. 손바닥으로 욱신거리는 부분을 눌렀다. 엎드린 채로 가만히 있었다.

황정은 백의 그림자


  날것의 이미지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이 부분을 읽으며 방의 불을 켰습니다. 날것의 이미지인 만큼 그 이미지에대한 두려움은 근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와 어둠에대한 두려움은 인간이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는 것이며 그 두려움이 표면으로 드러났을 때 그림자는 힘을 가지고 사람을 뒤덮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설을 덮고 무심코 제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그림자로 표현된 우리의 어두운 내면을 우리는 부정합니다. 의식이 덮고 있는 추, 악, 위는 일종의 타자가 되어 언제나 우리를 침식하고자 위협을 가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두운 내면에 대한 두려움, 언제나 우리 안에 내제되어있을 가능성에 대해 강렬한 이미지와 약간 모자라 보이는 인물들, 스러져가는 상가라는 소설로 보여준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




신고

'이쿤의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 리뷰] 황정은 - 백의 그림자  (0) 2011.01.12

댓글을 달아 주세요


티스토리 툴바